언론보도

인력 충원이 무리한 요구일까 (파업투쟁 100일. 일하는 사람에게 직접 듣는 강북구도시관리공단 파업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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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국민주일반노동조합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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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북구 17명의 사서

홍예은. 20살 초반에 대학을 졸업하고 무엇을 할까 고민하다가 도서관 사서가 되기로 했다. 문화관광 해설사도 꿈꿨고, 방송국 PD가 되고 싶기도 했다. 하고 싶은 것이 많지만 지금은 6년 차 사서 직원이다. 이곳 강북문화정보도서관으로 온 것은 3년 전.

“도서관이 2001년 개관할 때 채용한 사서 분들이 거의 그대로 유지된 거예요. 10년간은 사서를 한 명도 채용하지 않다가, 제가 입사하기 5년 전부터 신규 채용을 했다고 하더라고요.”


10년간 신규 채용이 없었다는 것을 보면 사람 뽑는 인심이 야박하다. 그러다 보니 같이 일하는 사람들은 다 너무 좋은데, 일이 많다는 단점이 있다고 말하게 된다.

“자치구 하나당 도서관이 7~8개 정도 되거든요. 종로구 통틀어 사서가 86명 정도에요. 강남구는 95명이고요. 강북구는 17명이에요. 이걸 처음 들었을 때 너무 충격을 받았거든요. 여기 도서관에요? 라고 되물었을 정도로. 강북구 전체에 17명이요. 이건 서울시 최하위일 뿐 아니라 전국으로 봐도 하위권일 거예요.”

단기 일자리로 채우는 공백

사서가 한 명 근무하는 도서관도 있다고 한다. 그가 휴일인 날에는?

“일 많은 것보다 그게 더 걱정이에요. 사서 한 명 있는 도서관은 주말에 단기 인턴 직원 혼자 출근할 때도 있거든요. 경비 반장님이랑 인턴 한 명. 누가 그 도서관에서 일어나는 일을 책임져야 할지 저는 너무 무섭거든요.”

 사람 없는 자리는 구멍이 나기 마련이다. 그 공간은 어떻게 메우나.

“단기 일자리로 그 공백을 채우고 있는 거예요. 근로학생, 청년 인턴, 시니어 근로자까지.”

단기 임시직 사람이 몇 명쯤 되냐고 묻자 예은씨는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몇 명쯤 되는지 숫자로는 셀 수가 없어요. 근로학생 경우는 주말에만 오는 사람, 평일에 오는 사람, 방학 때 오는 사람. 청년 인턴의 경우에는 보통 2~3개월짜리. 여기에 시니어 근로자분들까지. 오고 가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누가 인턴인지, 근로학생인지, 공공근로인지 구분이 안 갈 정도거든요.”

예상되지만, 2개월짜리 인턴이 와서 할 수 있는 일은 짐 나르고 책 꽂는 것밖에 없다. 한 달 일을 가르치면 한 달 뒤에 떠난다. 예은씨가 일하는 도서관은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라고 했다. 사서 한두 명이 근무하는 도서관에서는 임시 직원의 근무 일정을 짜고 교육하고 관리하는 데 시간을 다 쓴다고 했다. 정작 사서 본인의 업무는 후순위로 밀린다.

이제야 밝히지만, 그의 일터는 내가 종종 찾는 도서관이었다. 갈 때마다 장서의 규모에 압도되어 서성이거나 노트북 자리를 찾아 헤맬 뿐,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유심히 본 적이 없다. 그 공간마저 단기 임시직으로 채워지고 있는지 몰랐다.

목소리를 낼 창구

90년대 말부터 지자체마다 도시관리공단이 세워진다. 구청이 직접 운영하던 주차ㆍ문화ㆍ체육시설 관리 업무가 공단에 위탁된다. 그 결과 공단에는 주차관리요원부터 문화센터 강사까지 다양한 직종이 소속되어 있다. 예은씨 또한 강북구도시관리공단 소속이다.

강북구도시관리공단이 만들어진 것은 1997년. 이전까지 공무원들이 하던 일이 갑자기 계약직ㆍ일용직 몫이 됐다. 임금 격차는 말할 것도 없고 숱한 차별이 쌓이고 쌓여 2010년대 초반부터 공단마다 노동조합이 만들어진다. 이후 계약직 일자리가 무기계약직이나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등 처우개선이 이뤄지고 있다.

예은씨도 안정된 일자리를 가지고 싶었다. 전 직장은 시 단위 도서관이었다. 하지만 소속만 그러할 뿐, 비영리 법인으로 민간 위탁된 상태였다.

“저는 살면서 도서관이 폐관되는 걸 처음 보았어요.”

그가 근무하던 도서관이 문을 닫았다. 운영비 등 수익률에 따른 결정일 텐데, 지역 도서관이 수익을 내길 기대하긴 여간 어려운 일이다.

“도서관이 폐관되니 저도 그냥 잘리더라고요. 그 과정에서 부당한 것도 있어서 탄원서도 쓰고 그랬지만, 목소리 낼 기회도 없이 직원분들이랑 울면서 헤어져야 했던 기억이 있어요.”

위탁이라는 이름 앞에 고용계약은 한낱 종잇조각이었다. 이를 깨달은 예은씨는 같은 위탁일지라도 지방공기업인 공단 소속의 도서관으로 취업을 시도했다. 입사에 성공했고, 수습 6개월이 끝나자마자 노조에 가입했다. 이 또한 폐관된 도서관이 준 교훈이었다.

“어떤 일이 있을 때, 제 목소리를 높여 이야기할 수 있는 그런 창구가 필요하겠다 싶었어요.”

이곳은 도서관이자, 그의 일터이니까.

인력 충원과 파업

내가 우리 동네 도서관 사서 예은씨를 만나게 된 까닭이 있었다. 어느 날 구 도서관에서 문자가 왔다. 행사 알림인가 싶어 보니, “우리 공단 노조가 파업을 진행한 지”로 시작하는 장문의 메시지였다. 노조 파업 때문에 “강북구민께 크나큰 불편을 드리게 된 점 진심으로 사과”한다고 했다. 강북구도시관리공단에서 보내온 것이었다.

이 문자에 관해 할 말이 많으나(개인정보보호 권리를 묻고 싶다), 그 메시지 덕에 동네 도서관에 싸우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리고 문자를 통해, 노사갈등의 쟁점이 인력 충원이라는 사실도 알았다. 공단은 성과급도 지급하고, 복리후생비(자기계발지원비, 건강검진비, 생일선물 등)을 지급하려 했으나 노조가 이를 거절한 채 파업에 돌입했다고 했다. 인력 충원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왜 생일선물을 준다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인력에 관한 공단은 입장은 이러했다.

인력 부족 문제는 “업무방식 개선 등을 통해 해소될” 수 있으며, 오히려 잉여 인력이 발생해 “구민들의 소중한 세금이 낭비될 소지”가 있다.

“작년에 제가 계산해보니까 240시간 연장근무를 했더라고요.”

유독 바쁜 날이 있다. 공단은 수익성을 논하는 공기업이라, 도서관일지라도 예산을 절약해야 하고 수익을 내야 한다. 예산 확보라는 이름 아래, 지원금 공모 사업에 꾸준히 응모해야 한다. 문화행사 담당인 예은씨는 기획서를 쓰고, 예산안을 쓰고, 공모 신청을 한다. 지원금 결산 기간이나 축제 준비 기간이 되면, 도서관 문이 닫히는 밤 10시에 내쫓기듯 나온다. 그런데 지금껏 그가 받은 초과근무 수당은 0원이다.

2018년 공단과 노조는 초과 근무가 없을 것을 약속했고, 초과 근무가 없도록 인력을 충원할 것을 약속했고, 공단은 그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그 결과 초과 근무수당으로 배치된 예산은 없고, 연장근무는 무급이다.

도서관 사서는 애초에 수가 적었다면, 다른 시설 사정은 어떨까. 공단은 도서관 외에도 문화예술센터, 체육시설, 캠핑장, 공영주차장 등을 운영하고 있다. 그곳에서 일하는 시설관리와 청소ㆍ미화 노동자는 고령이다. 매년 정년퇴직자가 생긴다. 코로나19가 오자, 퇴직자는 증가했다. 그런데 사회적 거리두기가 해제된 지금도 추가 채용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업무는 이전보다 늘었는데, 사람만 없다.

100일의 파업

강북구도시관리공단 소속 노동조합은 오늘로 100일째 파업투쟁 중이다.

“제가 입사했을 때는 코로나이기도 해서 별 활동이 없었어요. 2021년에 정기총회를 한 번 갔는데, 노조 간부분들이 삭발을 하더라고요. 너무 놀랐어요.”

목소리를 낼 창구가 필요하다고 야심 차게 말했지만, 예은씨는 그저 조합비 잘 내는 조합원 1인이었다.

“지금 와서 돌이켜 보니, 사실 그때부터 문제가 불거졌는데. 저랑 일반조합원들은 사태의 심각성을 몰랐던 것 같아요.”

시작은 단체교섭이었다. 임금 및 근무조건을 정하는 정례적인 협상자리. 그 자리에서 노조는 인력 충원과 초과근무 수당 지급을 주요하게 요구했고, 공단은 거절했다. 단체교섭이 결렬되고, 조합원 과반수가 파업에 찬성하였다. 노조는 파업을 돌입한다. (결렬과 과반 찬성 등 단체행동권의 법적 절차를 굳이 언급하는 이유는, 툭하면 ‘불법 파업’ 운운하는 일부 언론 때문이다.)

공단과 교섭이 결렬되자, 노조는 강북구청으로 갔다. 공단이라는 중간 다리를 세워놓았지만, 지자체 예산 없이는 단 한 명도 채용할 수 없는 구청 소속 시설이었다. “최종 승인권자가 구청장이잖아요.” 공단 예산 시정권과 감독 권한은 구청장에게 있었다.

그러나 강북구청은 자신들과 대화할 사안이 아니라고 했다. 공단 문제는 공단과 해결하라. 그렇지만 2022년 구의회에서 배정한 공단 직원 초과근무수당에 관한 예산을 공단이 ‘시니어 근무자 채용’ 예산으로 전환했을 때, 이를 협조하거나 방조한 것은 강북구청이다. 권한은 있으나 책임은 없는가.

노조는 구청 앞에 농성장을 세웠다. 로비 농성도 했다. 분회장이 37일간 단식을 했다. 파업을 시작할 때 예은씨는 3일만 열심히 하면 될 것이라 믿었다. 자신이 뼈가 앙상한 분회장을 보며 왈칵 눈물을 쏟을 거란 상상은 차마 하지 못했다. 100일이 흘렀고, 지금은 3명의 조합원이 남아 부분 파업을 진행 중이다.

“안타깝고 슬픈 일이 참 많았거든요. 어떤 선생님이 이런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길거리 지날 때마다 시위하는 사람들을 보면, 참 시끄럽다 그런 생각만 했대요.”

이제 그 자리에 자신들이 있었다.

“그 입장이 되고 보니, 할 수 있는 게 이것밖에 없는 마음을 알겠더래요. 부당한 걸 이야기하는 행위가 옳다고 생각해서 목소리를 내는 것뿐인데. 약자 목소리가 묻히는 것은 너무 당연하더라고요.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작은 자리에서 우리끼리 이야기하거나 지하철역 앞에 전단지를 돌리면서 한 번만 읽어달라 간청하거나.”

한겨울 언 손을 녹이며 전단지 1000장 뿌리고 왔는데, 다음 날 메이저급 언론에서 불법 파업 운운하는 제목의 기사를 낸다.

<도시관리공단 노조 파업. 구청장 길들이기?>, <관공서 불법 점거가 무슨 유행처럼 된 나라> (조선일보)
열심히 보도자료를 내는 강북구청 홍보담당관과 이를 열심히 보도하는 메이저급 언론에 대해서는 하고 싶은 말이 많지만, 이 또한 넘어가자. 여기서는 예은씨의 이야기를 더 들어보고자 한다. 100일이다. 뻔한 질문.

이 100일의 싸움이 무엇을 남겼는가.

“추억이요. 제가 언제 살면서 길바닥에 떨면서 피켓을 들고 서 있어보겠어요.”

힘내 볼 생각

언제 경찰이 잔뜩 깔린 거리를 행진해 보겠으며, 언제 자기가 직종도 나이대도 전혀 다른 조합원들과 친구가 되어 보겠냐고 했다. 예은 씨는 대답을 정정한다.

“남은 게 추억이 아니라, 끈끈함이네요. 소중한 추억을 함께 만든 사람들과의 끈끈함.”

20대의 예은씨. 조금 더 보람 있고, 합당하고, 안정적인 일을 갖고 싶다는 아주 평범한 바람을 가지고 취업을 준비하고 여러 선택을 했다. 그래서 촛불을 들고, 노조 조끼를 입었다.

“저는 최선을 다했지만 실패하는 것과 최선을 다해 보지도 못하고 실패하는 것은 다르다고 생각해요. 물론 실패하지 않을 거지만.”

3년 전 민간 위탁 도서관이 문을 닫았을 때, 아무것도 해보지 못한 일을 떠올린 것이다.
“그때 생각이 많이 나는 건, 그때도 한 번이라도 목소리를 내볼 걸. 제가 젊고 하니까, 주변에서 다 말려요. 다른 데로 가라. 왜 여기서 싸우고 월급도 못 받고 그러냐. 그렇지만. 최선을 다해보고 싶어서. 이게 제 선택이니까. 일단은 제 힘이 닿는 데까지는 계속 힘을 내볼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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