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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두 차례의 죽음, 서울대학교는 과연 변화하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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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국민주일반노동조합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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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차례의 죽음, 서울대학교는 과연 변화하였는가?
- 2019년 8월 9일 302동 청소노동자 사망 사건 2주기 공동성명 -

2년도 되지 않아 또다시 되풀이된 죽음

  2년 전 8월 9일, 폭염에 대비한 냉방시설조차 제대로 갖추어져 있지 않은 휴게실에서, 곰팡이와 청소 기름 냄새가 머리를 아프게 하는 지하 공간에서, 우리는 한 분의 청소노동자를 떠나보내야 했다. 2019년 당시 교육부가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서울대 건물 총 166곳 중 54.22%인 90곳에만 청소노동자 휴게실이 존재하였으며, 그마저도 대부분 지하나 계단 아래 공간에 위치하였다. 열악한 휴게공간과 노동환경에서 발생한 이 ‘사소하지 않은 죽음’은 명백한 사회적 타살이었으며, 서울대학교가 대학의 일상을 유지하는 노동자들을 얼마나 비인간적인 조건으로 내몰고 있었는지를 선명하게 드러낸 사건이었다.

  그러나 2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서울대학교의 현실이 얼마나 나아졌는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6월 26일 또 한 사람의 청소노동자가 사망에 이르는 현실을 목도해야 했다. 사람의 목숨만큼 귀한 것도 없을 터인데, 왜 서울대학교에서 이러한 죽음은 반복되어야만 하는가. 2년 전에 이어 또다시, 노동자들은 ‘죽음’을 통해서야 비로소 이전에는 은폐되어 있었던 생전의 열악한 노동환경을 고발할 수 있었다.

  두 차례나 반복된 죽음은 여전히 서울대 내 청소노동자들을 포함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환경이 개선되지 않았음을 보여주었다. 고통스럽지 않게 일할 수 있고 죽지 않고 퇴근할 수 있는 직장을 요구해온 노동자들의 응당한 요구에 대하여 학교가 침묵으로 일관했다는 사실 또한 명백하게 드러났다.

2019년의 죽음에도 노동자 휴게공간에 제대로 된 개선은 없었다

  올해 발생한 사망 사건 이후, 온라인 커뮤니티와 언론상에 공유된 한 장의 사진을 통해 청소노동자 휴게공간의 열악함이 다시금 화제로 떠올랐다. 2019년 사망 사건 후 거듭되는 학생과 노동자들의 요구 속에서 서울대 당국은 2020년 말에야 뒤늦게 대대적인 휴게공간 개선 작업을 진행한 바 있다. 그러나 창고 뒤 청소 용구와 비품이 쌓인 공간을 휴게실로 사용해야 하는 서울대 중앙도서관 관정관 청소노동자들의 현실은 해당 개선 작업의 미흡함을 선명하게 드러냈다.

  2020년 말에 이루어진 휴게공간 개선 당시 대학 당국은 실제 서울대학교와 각 건물의 방대한 면적을 제대로 고려하지 않고 지나치게 띄엄띄엄 개선된 휴게실을 설치하였다. 그러나 개선된 휴게공간에서 쉬기 위해 근무지에서 먼 거리를 이동하는 것은 근무조건 및 시간상 불가능하였기에 현실적으로 다수 노동자들이 개선의 혜택을 누리지 못해온 것이다. 관정도서관에 새롭게 개선된 휴게공간이 존재하였음에도 청소노동자들이 열악한 창고에서 쉬어야 했던 현실은 이처럼 학교의 일방적인 미봉책 집행이 현장의 요구와 동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발생한 셈이다. 현실에 대한 지적과 비판적 여론에 떠밀려 급급하게 ‘보여주기’ 식으로 진행된 개선 작업은 이처럼 실제 노동 현장과 노동조합의 목소리를 청취하지 않고 이루어졌기에 실질적 처우 개선으로 나아가지 못하였다.

    2021년 사망 사건 이후에도 그동안은 예산이 없다며 개선 작업을 진행하지 않던 학교 당국은 급박히 안전바 설치와 미개선 휴게실 공사 및 샤워실 개선 등에 나서고 있다. 여론의 비판이 제기되기 이전에는 선제적으로 공간 개선에 나서지 않으며 예산 부족만을 핑계 대던 서울대의 모습은 몹시 씁쓸하게 다가온다. 아울러 이번 공간 개선도 현장의 목소리를 제대로 반영하지 않는 일방적 미봉책에만 그치는 것은 아닌지 우려가 크지 않을 수 없다. 노동자들의 고통을 진지하게 고려하지 않고 사태에 대해 언제나 미봉책으로만 일관하는 학교의 인식이 변화하지 않는다면, 실질적 개선이 이루어지기란 요원할 뿐이다.

2021년 사망 사건 이후, 과연 서울대는 변화하였는가?

  진정성 없이 노동을 바라보던 학교의 변화하지 않은 인식과 태도는 이번 사건에 대한 대응에서도 드러났다. 최근 기숙사 당국은 사망 사건 발생 이후 혼자 휴식하던 중 급작스럽게 사망하는 상황을 미리 예방하겠다는 명목으로 1인 휴게실을 폐쇄하고 여러 사람들이 함께 쉬도록 휴게공간을 합치자는 주장을 내놓았다. 그러나 이는 코로나19 상황에서 집단감염의 위험으로 인해 휴게공간을 나누어온 기존의 보건안전 대책에 전적으로 역행하는 것은 물론이고, 실제 사망 사건의 원인을 근본적으로 짚지 않는 터무니없는 미봉책에 불과하다. 물론 노동자가 혼자 휴식하던 중 급작스러운 건강 악화를 경험하거나 사망 이후 장시간 방치되는 상황을 막기 위해 비상시 긴급 신고를 하거나 동료 노동자가 상황을 빠르게 파악할 수 있는 대책을 수립하는 일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이번 사망 사건의 원인인 직장 내 갑질과 비인간적 노동강도를 해소하기 위한 진지한 대안은 전혀 내놓지 않으면서 노동자가 ‘혼자’ 죽는 상황만을 예방하겠다고 미봉책만을 내놓는 모습은, 과연 노동자가 ‘죽는’ 현실 자체를 근본적으로 개선하기 위한 의지를 학교 당국이 갖고 있는지 의심스럽게 만들 따름이다.

  이러한 학교의 미흡한 인식과 대처는 8월 5일 열린 총장과 유족 및 관악학생생활관 동료 노동자들 사이의 간담회에서도 나타났다. 해당 간담회는 실질적 대책 수립이 수반되지 않은 뒤늦은 총장 명의 사과문 발표 이후, 학생은 물론이고 노동조합의 참여까지도 배제한 채 진행되었다. 오세정 서울대 총장은 이전 입장문에서 노동조합의 노동환경 개선 요구를 청취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간담회에서는 현장의 요구를 지속적으로 수렴해온 노동조합을 학교 공동체의 주체적 구성원이자 대화의 정당한 상대로 인정하지 않는 모습만을 보였기에 몹시 유감스럽지 않을 수 없다. 동시에 간담회에서 총장이 제시한 ‘조직 문화 개선’은 물론 반드시 필요하지만 근본적인 처우 개선을 모두 포괄할 수 있는 대안이 아니다. 이미 존재하는 교재를 활용하여 각 기관의 전 직원에게 갑질 예방 교육 실시 권고만을 내린다고 두 차례의 죽음을 야기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포괄적 노동환경에 대한 문제 제기는 묵살되었고, 인력 충원과 차별적인 고용구조 해소는 물론 노동강도 완화라는 매우 직접적인 사망 원인 해결 방안도 해당 간담회에서는 제대로 언급되지 못하였다. 대학본부의 이번 사과와 소통 시도가 ‘보여주기’와 ‘퍼포먼스’에 불과한 것은 아닌지 되묻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지점이다.

서울대학교의 근본적 변화만이 죽음의 행렬을 막을 수 있다

  시간차를 두고 발생한 두 차례의 죽음에 대하여 학교가 보인 반응과 태도는 근본적으로 일관적이었다.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제대로 수용하지 않고 여론의 문제 제기에 대해 잠시 지나가는 소나기 피하듯 보여주기식 미봉책으로만 일관하는 대학본부의 태도는 전혀 변화하지 않았던 것이다.

  물론 국정감사에서의 발언을 제외하고는 어떠한 공식적 사과도 없었던 2019년 사망 사건과는 달리 2021년의 죽음에 대해서는 뒤늦게나마 총장이 고인과 유족 및 동료 노동자들에 대하여 사과를 표명하고 표면적으로나마 소통 의사를 보였다. 이는 불행 중 다행이지만 말뿐인 사과는 오히려 무대응보다 더 무책임할 수 있음을 대학본부는 명심해야 한다. 단순히 형식적인 갑질 예방 교육만을 전 직원에게 실시하는 데 그치는 대신 관리자들이 실질적으로 통제적 노동 관리와 고압적 직장 내 괴롭힘의 가해자가 되지 않도록 교육하려는 노력이 더 필요하다. 아울러 1인 휴게실 폐쇄나 주말 근로 폐지와 같은 터무니없는 미봉책으로 일관하는 모습은 즉각 변화시켜야 한다. 대신 인간다운 노동강도 보장을 위한 인력 충원과 최소한의 처우 보장을 위한 서울시 생활임금 보장, 그리고 처우 개선을 대학본부가 책임지기 위한 총장 발령 고용형태로의 평등한 고용구조 전환 등의 근본적 해결책이 제시되어야 한다. 13일까지 고용노동부에 학교 측이 제시해야 하는 개선방안 내에 이러한 근본적 해결책이 포함되는지 우리는 똑똑히 지켜볼 것이다.

  2019년 죽음을 초래한 열악한 휴게공간 문제와 2021년 사망의 배경에 놓인 갑질 및 지나친 노동강도는 표면적으로는 서로 다른 문제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점들은 포괄적인 노동환경의 열악함에서 기인한다는 점에 맥을 같이한다. 노동자의 인간다운 존엄을 전반적 노동환경에서 보장하려는 인식과 태도의 전환이 서울대학교에 없었기에 우리는 되풀이되는 죽음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한 번의 죽음에도 노동환경이 근본적으로 변화하지 않았기에 두 번째 안타까운 죽음이 초래되었고, 이번에도 학교가 변화하지 않는다면 또 다른 기관에서, 또 다른 직종에서, 언제 미리 막을 수 있는 죽음이 재발할지 모른다. 그렇기에 두 차례의 사망 사건을 마주하며 각 직종의 노동자들 모두 그 누구도 생명과 안전이 위험한 현실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 이번 2주기를 맞아 우리 학생과 노동자들은 2년 새에 세상을 떠난 두 분의 노동자를 추모하며, 더는 죽음이 반복되지 않는 학교를 만들기 위한 근본적인 처우 개선에 책임 있게 나설 것을 서울대 당국에 요구하는 바이다.

2021. 08. 09.
비정규직 없는 서울대 만들기 공동행동 · 전국민주일반노동조합 서울대시설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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